
목차1. 신화의 주인공들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주요 등장인물2. 사랑과 구출은 무슨, 뻔뻔함이 난무하는 줄거리 3. 정반대로 뒤집힌 오르페우스 설화의 매력 4. 전율의 2박자, 대표곡 '캉캉(Galop infernal)' 분석 |
신화를 발로 차며 뛰어오르는 발칙한 풍자,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 줄거리와 캉캉 분석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 어린 시절 그리스로마신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면 누구나 기억할 이 대사의 주인공, 리라를 뜯던 영웅 오르페우스가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완전히 망가집니다.
우리가 흔히 화려한 무희들이 치맛단을 들어 올리며 발을 차는 춤과 함께 떠올리는 '캉캉' 음악. 이 신나는 곡이 사실은 그리스 신화를 가장 발칙하게 비틀어버린 오페레타(Operetta)의 대표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오페라가 웅장한 대서사시의 드라마라면, 오페레타는 가볍고 경쾌한 미니시리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낭만 시대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가 1858년에 선보인 문제작,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Orphée aux Enfers)>의 유쾌한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신화의 주인공들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주요 등장인물
<지옥의 오르페우스>는 엄숙한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데려와 인간보다 더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코믹 캐릭터로 재탄생시킵니다.
- 오르페우스 (Orphée): 신화 속에서는 음악으로 온 세상과 명부의 심금을 울리던 천재 음악가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내에게 관심조차 없는 평범하고 무능한 바이올린 연주자에 불과합니다.
- 에우리디케 (Eurydice): 오르페우스와의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에 넌더리가 난 아내입니다. 오히려 지옥의 신 플루토와 눈이 맞아 자발적으로 도망을 감행하는 주체적인(?) 인물이죠.
- 플루토 / 하데스 (Pluton): 지하 세계의 신이자 에우리디케의 새로운 연인입니다.
- 주피터 / 제우스 (Jupiter): 신들의 왕이지만, 플루토가 에우리디케를 가로챈 것을 알자마자 흑심을 품고 벌(bee)로 변장해 직접 유혹에 뛰어드는 뻔뻔한 최고신입니다.
- 공공의 의견 (Opinion publique): 이 극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로, 겉으로는 도덕과 체면을 부르짖으며 오르페우스를 떠밀어 억지로 아내를 찾아오게 만드는 감시자 역할을 합니다.
2. 사랑과 구출은 무슨, 뻔뻔함이 난무하는 줄거리
1막: 영혼 없는 부부와 자발적 가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 난 지 오래입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에우리디케 역시 몰래 지옥의 신 플루토와 밀회를 즐기다 결국 그의 손에 이끌려 지옥으로 향합니다. 아내가 사라지자 오르페우스는 슬퍼하기는커녕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죠. 하지만 이때 깐깐한 '공공의 의견'이 나타나 체면이 말이 아니다며 오르페우스를 억지로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2막: 신들이 더 노는 지옥의 파티 올림포스 산의 신들은 인간들보다 한 수 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주피터는 플루토를 훈계하는 척하며 벌레로 변장해 에우리디케를 가로채려 애를 씁니다. 마침내 지옥에 도착한 오르페우스, 그리고 신들과 악마들이 뒤엉켜 벌이는 지옥의 파티! 결국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를 따라나서는 대신, 술과 향락의 신 바커스의 품에 안겨 자유롭고 흥겨운 파티의 삶을 영원히 택하며 해피엔딩(유쾌한 난장판)을 맞이합니다.
3. 정반대로 뒤집힌 오르페우스 설화의 매력
전통적인 신화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는 모든 면에서 180도 정반대의 궤도를 그립니다.
- 오르페우스의 성격: (신화) 비극적 순애보와 위대한 음악의 천재 ➔ (오페레타) 아내에게 무관심하고 연주도 지독하게 못 하는 평범한 남편
- 에우리디케의 성격: (신화) 남편을 사랑하고 비극적으로 요절한 순종적 여인 ➔ (오페레타) 남편이 지긋지긋해 지옥의 신과 바람난 신여성
- 플루토의 역할: (신화) 강제로 아내를 납치해 가는 냉혹한 지하의 지배자 ➔ (오펜바흐) 로맨스를 즐기는 유쾌한 연애 공범
- 결말: (신화) 뒤를 돌아보다 아내를 영영 잃고 슬피 우는 비극 ➔ (오펜바흐) 지옥의 파티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나게 해방을 즐기는 해피엔딩
이처럼 엄숙주의에 사로잡힌 신화와 당시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을 묵직한 설교 대신 '웃음과 풍자'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 이 작품의 진짜 백미입니다.
4. 전율의 2박자, 대표곡 '캉캉(Galop infernal)' 분석
<지옥의 오르페우스> 2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지옥의 갈롭(Galop infernal)', 즉 우리에게 친숙한 '캉캉'은 이 오페레타의 존재 이유이자 클라이맥스입니다.
- 음악적 특징: '갈롭'이란 말이 콩콩 뛰며 달리는 모습을 묘사한 경쾌한 2박자 리듬을 뜻합니다. 곡이 시작되면 숨 가쁘게 치솟는 고속의 음계와 반복적인 리듬이 청자의 심장 박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 무대와 대중문화 속 활용: 원래는 지옥의 신들과 악마들이 흥에 겨워 미친 듯이 춤추는 장면을 위해 쓰였으나, 이후 19세기 후반 파리 카바레의 화려한 캉캉 춤과 결합하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대중 음악으로 거듭났습니다. 오늘날에도 코미디, 광고, 영화 속에서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터뜨릴 때 어김없이 소환되는 마성의 곡이지요.
마치며
<지옥의 오르페우스>는 "신화는 반드시 경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부수며, 권위와 허영으로 가득 찬 사회를 유쾌하게 조롱하는 명작 오페레타입니다. 무겁고 어려운 오페라의 문법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폭소를 터뜨리며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찾고 계신다면 이 발칙한 지옥의 파티에 꼭 한번 합류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