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1.현실을 닮아 더욱 깊은 공감을 주는 주요 등장인물2.빨래를 빨며 얼룩을 지우듯, 일상을 버텨내는 이야기 3.마음을 적시는 대표 넘버와 감상 포인트 |
저번 글들에서는 웅장한 스케일의 해외 대형 명작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우리 곁에서 숨 쉬듯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온기를 담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자존심, <빨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잠시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를 짚어보면, 오페라는 전통적인 성악 창법과 오케스트라를 바탕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중심의 바로크 시대 유럽 예술극인 반면, 뮤지컬은 대중음악 창법과 전자음향, 그리고 대사와 춤, 연기, 무대장치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근대 영국·중심의 종합예술입니다. 이러한 형식적 차이 속에서 <빨래>는 소극장이라는 친밀한 공간을 무대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서민들의 삶을 노래합니다. 2005년 초연 이후 대학로를 지켜온 이 명작의 매력을 함께 파헤쳐 볼까요?
1. 현실을 닮아 더욱 깊은 공감을 주는 주요 등장인물
뮤지컬 <빨래>의 가장 큰 미덕은 악당이나 영웅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 나영: 강원도에서 꿈을 안고 상경해 서울 변두리 동네의 대형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 여성입니다. 고단한 서울살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대표적인 성장형 캐릭터죠.
- 솔롱고: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서 겪는 온갖 차별과 설움을 견디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무지개(솔롱고의 몽골어 뜻) 같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다정하고 성실한 청년입니다.
- 씨어터의 이웃들: 항상 억척스럽지만 정이 넘치는 '주인 할머니'와 푸근한 '옆집 아주머니', 그리고 겉으로는 돈만 아끼는 얄미워 보이지만 그 역시 가난의 무게를 짊어진 건물주 '구씨'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인물들이 극을 풍성하게 채웁니다.
2. 빨래를 빨며 얼룩을 지우듯, 일상을 버텨내는 이야기
무대는 서울의 한 달동네 다세대 주택 빨래터입니다. 강원도를 떠나 대형 서점에서 일하는 나영은 매일같이 부당한 대우와 서러움에 눈물 흘리지만, 가족들에게는 늘 "잘 지낸다"며 거짓말을 하곤 합니다.
우연히 같은 건물에 사는 몽골 청년 솔롱고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은 빨래를 널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묘한 설렘을 키워나갑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해고 위기와 이주노동자가 겪는 부조리한 현실은 이들의 사랑과 삶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래>는 거대한 사건이나 비극으로 도약하지 않습니다. 대신 빨래를 두드리고 널며 서로의 아픔을 털어내고, 내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평범한 일상의 연대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적셔나갑니다.
3. 마음을 적시는 대표 넘버와 감상 포인트
소박하지만 가슴을 후벼파는 노랫가사들은 <빨래>를 명작 반열에 올린 일등 공신입니다.
- 서울살이 어느덧 10년: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회지에서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곡으로, 첫 소절부터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 참 예뻐요: 솔롱고가 상처 입은 나영의 마음을 위로하며 건네는 진심 어린 고백 송입니다. 담백하고 잔잔한 멜로디 속에 진한 사랑이 묻어나는 명곡이죠.
- 빨래: 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바람에 빨래가 나부끼듯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다지는 희망의 합창입니다.
- 내 이름은 솔롱고: 이방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겪는 설움과 자신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리는 솔롱고의 솔로 곡으로,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울립니다.
- 안녕: 나영과 솔롱고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며 설렘을 나누는 따뜻한 곡입니다.
마치며
뮤지컬 <빨래>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거대한 스펙터클은 없지만, 우리의 일상과 가장 맞닿아 있는 온기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상시 오픈런으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대학로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만약 공연장을 찾을 시간이 마땅치 않다면, 퇴근길 이어폰을 꽂고 '안녕', '빨래', '참 예뻐요' 같은 대표 넘버들을 먼저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홍광호 배우님이 부른 버전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같은 곡이라도 배우들마다 노랫말을 해석하고 감정을 얹는 결이 미묘하게 다르니, 여러 버전을 비교해 들으며 내 마음에 콕 박히는 최애 음원을 찾아보시는 것도 큰 재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