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1. 엇갈리는 신념과 사랑, 주요 등장인물들의 서사2. 거대한 역사의 흐름, <레미제라블>의 서사 구조 3.영혼을 적시는 대표 넘버 감상 포인트 |
빅토르 위고의 대작 소설을 무대 위로 옮겨온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1980년 초연 이래 전 세계 뮤지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걸작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현란한 안무 없이도, 오직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합창과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법과 자비', '혁명과 희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통해 관객들을 압도하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음악을 가르치는 제 눈에도 언제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교과서 같은 명작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레미제라블>의 뼈대를 이루는 서사와, 가슴을 울리는 대표 넘버들을 깊이 있게 짚어보려 합니다.
1. 엇갈리는 신념과 사랑, 주요 등장인물들의 서사
<레미제라블>의 매력은 선과 악이 단순하게 나뉘지 않고, 각자의 신념과 상처를 품은 입체적인 인물들이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딪힌다는 점입니다.
- 장발장 (Jean Valjean): 단 한 조각의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전과자입니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의 은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은 뒤, 평생을 약자를 돕고 속죄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끝까지 그를 쫓는 자베르와의 대립 속에서 진정한 자비와 희생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 자베르 (Javert): 법과 질서야말로 세상의 절대적인 정의라고 믿는 철저한 경찰관입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던 자신의 신념과, 법을 어기면서도 선을 행하는 장발장의 모순된 모습 사이에서 깊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며 비극을 맞이합니다.
- 판틴 (Fantine): 가난과 시대의 폭력 속에서 가장 비참하게 부서져 가는 인물입니다. 어린 딸 코제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 쓸쓸히 세상을 떠나지만, 그녀의 삶은 장발장의 남은 인생을 지탱하는 거대한 숙제가 됩니다.
- 코제트와 마리우스 (Cosette & Marius): 핍박받던 과거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연인입니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바리케이드 앞에서 피어난 이들의 사랑은, 비극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내야 할 희망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 에포닌 (Éponine): 마리우스를 향한 가슴 아픈 짝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순애보는 극 중 가장 눈물 마르지 않는 명장면을 만들어냅니다.
2. 거대한 역사의 흐름, <레미제라블>의 서사 구조
작품은 1815년 가석방된 장발장의 방황으로 문을 엽니다. 사회의 냉대 속에서 절망하던 그가 주교의 촛대를 통해 거듭나고, 공장장 마들렌으로 성공하여 판틴의 딸 코제트를 거두어 키우는 과정은 1막의 뼈대를 이룹니다.
2막은 세월이 흘러 1832년 7월 혁명의 파리 시내로 무대를 옮깁니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바리케이드를 쌓은 젊은 학생들의 혁명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희생과 용서, 그리고 장발장의 조용한 죽음과 해원은 관객의 가슴속에 잊지 못할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3. 영혼을 적시는 대표 넘버 감상 포인트
<레미제라블>은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만 이어지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인 만큼, 넘버 하나하나가 극의 서사와 심리를 완벽하게 대변합니다.
- Look Down (오프닝): 바닥을 보며 짓밟힌 삶을 살아가는 죄수들의 억압된 노랫소리로 극의 문을 엽니다. 여담이지만, 이 묵직하고 비장한 도입부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1>의 오프닝을 여는 일꾼들의 얼음 깨는 노래와 결이 아주 닮아 있어 음악적으로 비교해 들으며 감상하는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 I Dreamed a Dream: 판틴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과거의 찬란했던 꿈을 회상하며 절규하는 곡입니다. 멜로디의 처절함이 가슴을 후벼파는 대표적인 명넘버입니다.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혁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부르는 자유와 저항의 함성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민중의 투쟁 현장에서 불렸을 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 On My Own: 에포닌이 비 오는 파리의 거리 홀로 걸으며 마리우스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애절하게 고백하는 솔로 곡입니다.
- Bring Him Home: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살려달라며 장발장이 신께 간절히 올리는 기도의 아리아로, 작품 전체에서 가장 경건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합니다.
- One Day More: 1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대합창 곡입니다. 서로 다른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등장인물의 멜로디가 하나의 거대한 화음으로 폭발하며 엄청난 전율을 안겨줍니다.
마치며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단순히 과거 프랑스의 혁명사를 다룬 역사극이 아닙니다. 비정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베풀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자비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아직 이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넘버들의 바다에 빠져보지 않으셨다면, 이번 주말에는 스크린이나 무대를 통해 꼭 한번 그 거대한 전율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